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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치>에 대해 처음 들은 게 언제였나요?

지금으로부터 2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감독이 “<전우치전>을 아십니까?”라기에 “전우치전? 알지” 그랬더니 “저는 <홍길동전>보다 <전우치전>이 더 재미있습니다”라고 말하곤 끝이었어요. 그러고 나서 지금으로부터 1년하고도 6개월 전. <거북이 달린다> 촬영 때 같이 한잔 했는데 “전작들은 다 직업이 있었는데, 이건 직업이 도사라서 건수를 만들기가 힘들어요”라는 말을 해요. 영문을 몰라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전우치전> 얘기를 해요. “그때 영화한다고 말했잖아요. 초고가 나왔는데 보시겠습니까?”라는 제안을 했죠. 그 다음에는 일산의 한 상갓집에 갔다가 김상호 유해진과 모였는데, 감독이 말하길 전우치를 강동원이 한데요. 와, 잘됐다. 그리고 임수정도 나온대요. 와, 좋아, 너무 좋아. 염정아도 나오고. 와, 더 좋아! 그러고는 “윤석 선배님은 화담입니다” “그럼, 황진이도 나오나?” “안 나와요” “에잇!” 하면서 시작됐죠.(웃음)

-원작의 서화담과는 거의 공통점이 없는데요, 어떤 캐릭터로 받아들이셨나요?

화담 서경덕 선생에 대한 자료가 거의 없어요. ‘송도삼절’이 있고요, <전우치전> 마지막 부분에선 망나니 전우치를 만나서 3일 만에 금강산 갔다 오는 내기를 하죠. 전우치가 이기면 화담이 제자로 들어가겠다고 말해요. 전우치는 비웃으면서 금강산에 딱 도착했는데 벽이 가로막고 있어요. 넘으려고 했는데 끝이 안 보이죠. 서경덕이 도술을 부려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깨달음을 줘요. 그래서 전우치를 산으로 데리고 들어가 도 닦았다는 이야기가 전부예요. <전우치> 배우들 중 원전을 안 읽은 사람은 없을 텐데, 그걸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재창조하는 과정이 재미있었죠.

-많지 않은 자료 중에서 어떻게 캐릭터의 정수를 뽑았습니까?

재해석되면서 바뀐 부분이, 화담이 500년을 살아요. 500년 만에 피리를 찾으려고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럼 그동안은 뭘 했냐는 거죠. 힌트는 있어요. 정치인에게 주는 사과 꾸러미에 사진이 있잖아요. ‘좌도방’ 마크가 떠 있고 정치하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죠. 세상을 지휘하는 무리와 살았다는 힌트죠. 그러나 수단보다는 정서가 관건이에요. 레스토랑 장면에서 아이에게 던지는 ‘더 살아도 결국 아무것도 없다’는 말이 그의 인생을 대변해요. 화담은 500년 동안 인간이 만들어놓은 사회에 대해 회의적이에요. 전쟁을 통해 수백만 명의 인간이 죽었지만 그들은 1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잘 살아가죠. 삶에 대한 회의와 체념으로 염세적인 시선을 갖게 돼요. 그래서 현대 화담의 상태는 ‘권태’라는 결론이죠. 화담의 선문답 같은 대사 하나하나가 정수를 뽑아내는 데 많은 도움이 됐어요.

-최동훈 감독에 대한 남다른 믿음도 갖고 계셨죠?

그렇죠. 최동훈 감독은 나를 매스컴 앞으로 바짝 당겨준 사람이잖아요. 최동훈 감독의 데뷔작부터 지금까지 같이한 네 명의 배우가 있어요. 백윤식 김상호 주진모 김윤석, 이렇게 네 명이 각별해요. 눈빛만 봐도 통하니까요. 현장에서 와이어를 한 번 설치하면 기본 네 시간이 걸려요. 그동안 우리가 뭘 하겠어요? 모여서 <전우치 2> 이야기를 만들어요. 그림 족자 속에서 화담이 다시 나온 다음에 전우치의 아군이 되는 건 어떨까? 초랭이는 애를 낳아서 강아지가 네 마리 정도 있고. 허허허.

-혹시 지금의 나이에도 도사에 대한 로망을 갖고 계십니까?

사실 저는 전우치 과입니다. 자유를 사랑하죠. 집에서 저의 모습은 전우치입니다.

-조금만 더 젊으셨으면 전우치 역에 도전했겠네요?

<전우치 2>에서는 제가 애 둘 낳은 전우치로 등장합니다. 허허허. 백윤식 선생님도 전우치를 하고 싶다고 그러셨어요. 전우치가 남자의 로망을 담고 있어요. 되게 자유롭잖아요. 무정부주의자이고 책임져야 할 가정이 없죠. 바다를 보고 싶으냐면서 바다를 보여주면 여자들이 뻑 가는 거죠. 화담은 그런 자유로운 모습에 질투를 느끼는 거고요.

-전우치와 화담은 모차르트와 살리에리의 관계 같기도 해요. 배우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이해가 갈 만한 관계잖아요. 화담과 살리에리는 항상 완벽하기를 원하지만 계속 한계에 부딪히는 비극적인 인물들이죠.

우리끼리 늘 말했던 것이 전우치는 도가(道家)에 가깝고 화담은 유가(儒家)에 가깝다는 점이었죠. 화담은 공명과 예의를 중시해서 세상에 무언가를 베풀고자 해요. 그러나 전우치는 그런 게 필요 없고 인간의 목표를 자유라고 생각하죠. 신기하게도 뭔가를 베풀겠다는 사람일수록 더 경직되어 있어요. 그래서 화담이 선에서 악으로 쉽게 넘어가는 겁니다. ‘Don’t Worry, Be Happy’인 사람은 유혹에 잘 안 넘어가요. ‘그거 해봤는데 재미없어’ 이러고 말죠. 항상 늦바람이 무서운 법이에요.

-그래서 젊었을 때 놀아야 한다는 결론이죠. 하하.

사람들의 존경심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배신을 당하면 완전히 꺾여버려요. 연예인도 마찬가지죠. 스타였던 사람이 쉽게 무너지는 것도 그 때문이에요. 화담도 그런 캐릭터 중 한 명인 것 같아요. 자신이 꿈꾸는 게 어그러지고 내부에 악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서 확 바뀌죠. 저에게는 극과 극의 지점에 닿아 있는 화담의 캐릭터가 매력적이었어요.

-화담의 질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성장을 위한 건강한 질투일까요?

질투는 자기의 파멸을 초래하는 짓이에요. 하지만 배우로서는 매력이 있죠. 고독하잖아요. 외로워서 인간적이에요. 자신이 저지른 업보를 혼자 뒤집어쓰고 파멸되는 게 매력적이죠. 누군가 도와주는 사람이 없고 나중에는 모두가 적이 돼요. 현실이라면 죽고 싶을 텐데, 영화에서는 즐길 만하죠.

-와이어 액션도 즐길 만했습니까?

강동원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탔어요. 연못에 빠지는 장면을 스물여섯 테이크 갔는데, 그때가 작년에 청룡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날이었어요. 무대 뒤로 퇴장하면서 바로 복도를 뛰어서 차 타고 문경에 도착했더니 새벽 1시였죠. 옷 갈아입고 해 뜰 때까지 촬영했어요. 다음 날 사극 드라마 팀에게 세트를 내줘야 했거든요. 달려가느라고 시상식 뒤풀이도 못했죠. 스물여섯 테이크 만에 촬영이 끝나고 해장국집에 가서 축하 인사를 들었어요. 그런데 와이어가 중독성이 있어요. 나는 게 어딥니까. 또 날아도 멋있게 날아야 하잖아요. 촬영할 때는 아픈 줄 모르고 찍다가 숙소 들어와서 샤워하면 몸이 온통 까져 있곤 했어요. 그래도 굳은 살 박힌 동원이에 비하면 약소하죠.

-<의형제> 촬영할 때 송강호 씨가 강동원 씨 보고 ‘<전우치> 팀은 술자리 환상의 멤버들’이라고 그랬다더군요. 실제로 술 많이 드셨죠?

<전우치>에 나온 배우들이 술자리에서 노는 데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사람들이에요. 강동원이 우리에게 체포당한 거죠. 지방에 오래 있으면 ‘스타’라고 해서 럭셔리한 호텔을 잡아주진 않아요. 여관에 다 집어넣어요. 촬영 끝나면 뭐 하겠어요? 동원이는 술자리 경험이 없는 친구라 처음에는 쉬겠다고 고사했어요. 전주에서 주로 촬영했는데 거기 가맥집(동네 가게를 변형해 만든 술집)이라고 있어요. 매일 밤 거기서 모였죠. 스태프들 지나가면 불러서 함께 먹고 그랬거든요. 어느 날은 동원이가 지나가다가 심심했는지 기웃기웃했어요. “야, 일루 와. 그만큼 생겼으면 술 먹어도 돼!” 그때부터 아저씨 팀으로 합류했죠. 일부에서는 동원이를 망쳐놨다고 하는데 본인도 새로운 세계를 맛본 거죠. 허허.

-김윤석 씨를 보면 팀워크가 굉장히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어요. 조연이든 주연이든 언제나 든든하게 영화를 받쳐주는 기둥처럼 느껴지죠.

일단 저는 제 앞에서 자유롭지 못하는 사람을 못 견뎌요. 앞에서 편하게 왔다 갔다 해야 마음이 편하죠. 저를 어려워하는 사람의 기운을 받으면 힘드니까 자유롭게 만들어야 해요. 낯가리는 건 용서 못하죠. 저랑 작업하는 이상, 저랑 비슷해져야 합니다.

Posted by P0206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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